[한스경제=김종효 기자] 전통시장이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혁신을 통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최근 광명전통시장, 부산 구포시장, 서울 마포구 망원동 농수산물시장 등 전국 각지에서 AI 스타트업과의 협업이 본격화되면서 상인과 소비자 모두 실질적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전통시장에 AI 기술이 접목되면서 시장 안전성 향상, 고객관리와 마케팅 효율화, 젊은 세대 유입 등 긍정적 효과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비용 부담과 고령 상인의 디지털 교육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여전하지만 현장 반응은 대체로 “실질적 도움이 된다”는 호평이 지배적이다.
과거 전통시장은 화재 등 안전사고에 취약했다. 그러나 최근 서울 마포 농수산물시장에 도입된 AI 화재순찰로봇은 이런 취약점을 크게 개선했다.
24시간 시장 내 위험을 조기에 발견하고 즉각 경보와 초기 소화까지 수행하는 AI 로봇 시범운영 결과, 80여건의 화재 위험 요소를 조기에 차단하며 대형 사고를 미연에 방지했다. 상인 70% 이상이 “로봇이 있어 안심된다”고 답할 만큼 체감 효과가 크다.
망원동 농수산물시장은 2018년 대형 화재를 겪었던 곳으로 상인들의 기대감이 특히 크다. 사람 키 높이의 이 로봇은 AI 기반 자율주행을 하면서 시장 구석구석을 누빈다. 열 감지 카메라와 각종 센서로 화재 징후를 실시간 포착해 119 자동신고 및 초기 소화까지 수행한다. 만약 불꽃이 아니라 이상 고온 같은 위험 요인을 감지하면 즉시 큰소리로 경고 방송을 하고 그 내용을 기록해 다음날 관리자에게 보고하는 기능도 갖췄다.
권혁민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장은 “화재예방 분야에 첨단기술을 도입함으로써 시민 안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AI 기반 리뷰·고객관리 솔루션 ‘댓글몽’을 도입한 부산 구포시장에서도 상인 및 고객 호응도가 좋다. AI 스타트업 르몽이 제공하는 이 서비스는 배달앱, 네이버 플레이스 등 다양한 플랫폼의 리뷰를 AI가 자동 분석해 상인에게 개선점을 제시하고 자동 답글 기능으로 고객과의 신속한 소통을 돕는다.
상인들은 리뷰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고 데이터 기반으로 메뉴 구성이나 서비스 품질을 개선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 활용에 서툰 고령 상인들도 직관적 인터페이스 덕분에 쉽게 활용할 수 있다는 평가다.
시장 단위로는 전체 점포의 리뷰를 종합 분석해 공통 문제점을 파악하고 서비스 품질을 전방위적으로 개선하는 피드백 경영이 가능해졌다. 실제로 AI 도입 이후 구포시장 상인회는 “매출 증대와 운영 효율 향상 효과가 뚜렷하다”고 밝혔다.
르몽 측은 “전통시장과 스타트업의 협력으로 상생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AI 고객관리 도구를 통해 고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단골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통시장은 그간 주로 고령층, 인근 주민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광명전통시장 등에서는 QR 모바일 지도, 앱 기반 배달 서비스, 간편결제 시스템 등 첨단 서비스를 도입해 MZ세대와 관광객의 유입이 늘고 있다.
앱에서 점포 위치를 쉽게 찾고 온라인으로 주문해 2시간 이내에 상품을 받아볼 수 있는 등 대형마트 못지않은 편의성이 강점이다. 온라인-오프라인 연계 소비패턴이 확산되면서 전통시장도 젊은 층과 외국인에게 친숙한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공간정보 AI 기업 다비오가 제공하는 모바일 길찾기 서비스는 시장 입구나 골목에 부착된 QR 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지도 앱이 열리면서 원하는 점포를 쉽게 찾을 수 있어 편리하다. 수산물, 정육, 반찬, 잡화 등 업종별로 가게를 카테고리화하고 직관적인 아이콘과 상호명을 표기해 처음 온 사람도 어느 골목에 어떤 가게들이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복잡한 시장 구조 탓에 초행 고객이나 관광객이 길을 헤매는 일이 잦았고 가게 간판만 보고서는 무슨 물건을 파는 곳인지 알기 어려워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한 상인은 “디지털 지도 도입 이후 길찾기 불편이 크게 해소됐다. QR 코드를 스캔하면 시장 내 화장실이나 주차장 위치까지 파악할 수 있어 이용 편의성이 높다”고 호평했다.
다비오는 향후 다국어 지원을 통해 외국인도 전통시장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관계자는 “광명전통시장을 시작으로 방문객과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디지털 공간정보 안내 서비스를 전국 주요 전통시장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AI 스타트업과의 협업은 전통시장과 기술기업 모두에게 윈윈이다. 르몽, 다비오 등 AI 스타트업은 리뷰 분석, 스마트 지도 등 전통시장 맞춤형 서비스를 개발해 지자체와 협력하고 시장은 최신 기술을 저렴하게 활용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이같은 기술은 정부의 지원정책과 맞물려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다만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선 비용과 교육, 지속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디지털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통시장 상인들은 고령층으로 스마트폰 활용이나 온라인 마케팅에 서툰 경우가 많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비용 부담도 적지 않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전통시장 상인 상당수가 디지털 기기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뭘 알겠느냐”, “온라인으로까지 장사할 여력이 없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이런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과 지자체들은 전국 전통시장을 돌며 디지털 교육과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엔 동반성장위원회·중소벤처기업부·KT·전국상인연합회가 협력해 전통시장 상인 대상 스마트폰 활용 교육과 온라인 플랫폼 입점 지원을 추진하기로 했다. 전통시장에 무료 와이파이 존을 구축하고 낡은 통신선을 정비해주는 작업도 함께 진행된다.
정부는 5만명의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현장실습 교육을 실시하고 디지털 교육장을 전국에 확충하고 있다. AI 솔루션 자체도 점차 사용자 친화적으로 발전해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있다.
AI 솔루션 도입과 유지에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 대규모 시장이나 점포가 많은 곳은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일회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 예산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정부는 전국 500곳의 디지털 전통시장, 10만개의 스마트상점 조성을 목표로 다양한 지원책을 추진 중이다. 빅데이터 플랫폼, 간편결제 인프라, 디지털화 정책자금 등 인프라 확충도 병행되고 있다.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AI 도입 비용을 지원하는 ‘AI 바우처’ 제도도 확대 중이다. AI 솔루션 도입을 원하는 기업에 이용권을 지급해주고 있는데 그 대상을 소상공인으로 확대하는 방안이다. 여러 전통시장 상인들을 하나로 묶어 상인회 주도로 AI 서비스를 구축하면 정부가 최대 수억원 규모의 바우처로 개발비를 지원하는 식의 방법을 도모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영세한 개인 상인들도 개발비 부담 없이 AI 기반 신규 사업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 이처럼 민관이 함께 디지털 문턱을 낮추기 위한 노력에 나서면서, 전통시장에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전통시장의 AI 도입 효과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전통시장 특유의 정겨움과 첨단 기술의 효율성이 결합하면 상인과 소비자 모두 윈윈이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주로 안전 및 마케팅 분야 위주로 전통시장에 AI 기술이 접목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수요 예측, 재고 관리, 가격 최적화 등 경영 효율화를 위한 AI 활용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일례로 전통시장의 매출 데이터와 주변 상권 정보를 AI가 분석해 품목별 수요를 예측하고 그에 맞춰 재고를 적정하게 확보하도록 조언해줄 수 있어 상품 품절이나 재고 과잉을 막아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AI 기반 가격 최적화 기술이 도입되면 시장 상인들도 데이터에 근거해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하거나 할인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전통적으로 감에 의존해오던 부분들을 AI가 뒷받침해줌으로써 경영의 과학화가 이뤄지는 셈이다.
고객 맞춤형 서비스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하면 시장을 찾는 고객들의 연령대, 선호 상품, 방문 시간대 등의 패턴을 분석해 맞춤형 상품 추천이나 개인화 마케팅이 가능해진다. 단골 고객에게 AI가 자동으로 맞춤 쿠폰을 발송하거나 특정 계절에 잘 팔리는 품목을 예측해 미리 홍보하는 식이다. 정부도 이런 스마트 상권 구축을 지원하기 위해 소상공인 빅데이터 플랫폼을 운영, AI 기반 예상 매출·고객 분석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코로나19를 거치며 급변한 유통 환경 속에서 전통시장이 생존하려면 디지털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정부 정책적 뒷받침과 AI 업계의 관심 속에 변화가 이뤄지고 있고 실사용자들의 호평도 이어지고 있어 전국의 전통시장 모두가 새롭게 거듭나는 시점이 더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